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붉은 산 (문단 편집) == 이 소설의 실체 == 국어 교과서 등에서는 이 소설을 '[[민족주의]] 소설'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소설은 항일 정신을 고취시키는 그런 [[민족주의]]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1931년 평양화교 학살]]에서 영감을 얻어 지은 소설이다. 우선 이 소설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이가 [[일본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란 점에 주목하자.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특성상 [[중국인]]이 악역 포지션에 있는 것부터 상당히 특이한 부분이다. 보통 일제강점기에 항일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민족주의]] 소설들은 [[일본인]]들이 악역으로 나왔지 [[중국인]]들이 악역으로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물론 당시 [[한국인]]과 [[중국인]] 간의 관계가 썩 좋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일단 [[한국인]]들의 [[주적]]은 [[일본인]]이었지 [[중국인]]이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중국인]]이 악역으로 나온 것부터가 특이한 점이다. 당시에도 중국인을 악역으로 설정한 소설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최서해]]의 [[소설]] [[홍염]]처럼 중국인 '''지주'''라는 성격에 더욱 초점을 맞추거나 이태준의 '농군'과 같이 조선인과 중국인 간의 문화적 갈등과 같은 좀 더 복합적인 면모에 집중하는 편이다. 또 이 소설 속 주인공인 정익호란 인물은 평소 마을 사람들에게 암덩어리나 다름 없는 존재였고 송 첨지란 인물과 정익호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익호는 이 일을 원인으로 지주에게 대들었다가 맞아 죽었다. 삵이 중국인 지주에게 대들다 죽은 과정은 개연성이 없다. 이상경 선생이 지적하듯 만주의 중국인과 이주한 조선인 사이에서는 문화 차이에 따라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으나 이런 이야기는 없다. 또한 중국인 지주의 착취 때문에 소작농의 삶이 고통스러울 수 있는데 이런 이야기도 없다. 수전 개간을 둘러싼 물리충돌이나 이것에 개입하는 일본 세력에 대한 묘사도 없다. 그런데 삵은 갑자기 중국인 지주에게 대든다. 삵은 조선인에게 암같은 존재였는데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한 것이다. * 다만 주인공 정익호(삵)는 평소 송 첨지와 아무 인연이나 이해관계가 없었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평판이 나쁜 암덩어리였는데 갑자기 지주에게 대든 것에 개연성이 없다는 주장에는 다소 이론의 여지가 있다. 사실 삵(정익호)이라는 인물의 행동양상은 전형적인 [[협객]]상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무위도식]]하며 마을 사람들에게 기생하고 분란이나 일으키는 백수 양아치지만 누군가(특히 자신이 기생하던 마을 사람)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것이 자신의 일도 아니고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도 없는데도 목숨을 걸고 권력자나 세도가에게 대항하는 것이 바로 동양(한국이나 중국)에서 [[다크 히어로]]의 한 전형으로 정립된 협객의 개념에 부합하는 것이다. 즉 정익호가 갑자기 중국인 지주에게 대든 것 자체는 일정한 문학적 개연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고, 삵을 바라보는 여의 관점(평소에는 쓸모없는 싸움질이나 하고 다니면서 정작 화를 내야 할 때는 조용히 있는 밥버러지)이나 남을 위한 복수를 해주려다 죽어가는 와중에 붉은 산과 하얀 옷, 애국가로 상징되는 민족적 정체성을 발견하는 삵의 모습은 고전적-전근대적 협객상을 근대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고 인정할 만하다. 단지 이 단락에도 거론된 다른 문제들, 즉 <당대 조선인에게 있어서 진짜 부조리의 원인인 일본인이 아니라 중국인을 주된 악역 -복수의 대상-으로 등장시킨 점>이나 <조선인과 중국인간의 문화적 갈등, 또는 지주와 소작농과의 갈등과 같은 복합적이면서도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여 독자들에게 왜 중국인 지주가 조선인의 적이며 삵이 하려고 했던 복수는 왜 정당한가를 제대로 납득시킬 수 없었던 점>[* 물론 사람, 그것도 촌장까지 할 정도로 마을에서 존경받던 노인이 맞아죽었으니 그에 대한 분노 자체에 대해서는 굳이 다른 정당성을 찾아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지적 역시 앞에서 지적된 바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하는 것이 적당하다. 즉 한국인(조선인)과 중국인 모두에게 일본인이 최대의 가해자로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게 인식되던 시대적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든 '''굳이''' 중국인을 악역으로 등장시키려면 그에 걸맞는 전후맥락을 설명하여 독자들에게 왜 작중 악역을 중국인으로 설정했는지 납득시킬 필요가 있었다는 것. 말하자면 (위에서 이미 제시된 의견들처럼) '지주'라는 특성에 집중하여 "일본인이든 중국인이든 가난한 한국인 소작농들을 뜯어먹는건 어차피 지주들 아니냐?"라는 메시지를 전달할수도 있고, 수전(논) 개간과 같이 한국인과 중국인간의 문화적, 생활상적 차이를 강조하여 "한국인과 중국인이 어울려 살기는 이렇게 힘들구나. 같이 살면 싸움을 피하기 어렵겠구나" 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거나 일본 세력이 배후에서 이간질하여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의 갈등을 조장한다는 것과 같은 '''설명'''등을 제시함으로써 작품의 주제를 드러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비판이 "[[일제강점기|그 시국]]에 개뜬금포로 중국인 악당이라니, 뭐 덮겠다고 야료부리는거 아니냐?" 라면 후자의 비판은 "야료를 부리려면 똑바로나 부려야지, 눈도 안 가려놓고 아웅하냐?" 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등으로 인하여 독자가 이런 서사적 구성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점은 이미 옛날부터 지적받았는데 김흥규는 1977년에 「황폐한 삶과 영웅주의」(문학과지성, 문학과지성사, 1977.03)에서 이점을 지적한 바 있다. 또 이런 소설은 김동인의 기존 창작 경향과도 전혀 달랐다. 이전에 김동인은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했고 작품에서 계몽주의스런 요소를 드러내는 걸 부정했다가 갑자기 이런 소설을 쑥 내민 것이다. 1931년 평양 화교 배척 폭동과 학살이 아니면 설명할 수가 없다. 붉은 산과 평양 화교 학살에 대한 연관성과 이에 대한 전문분석은 이상경이 쓴 다음 논문을 참고하자. 이상경, 1931년의 ‘배화(排華)사건’과 민족주의 담론, 만주연구 11, 2011.6, 107~110; 김동인의 「붉은 산」의 동아시아적 수용 - 작품 생산과 수용의 맥락, 한국현대문학연구 44, 2014.12, 249~255 이상경 교수가 김동인의 소설과 달리 호평한 소설은 이태준의 <[[농군]]>이다. 붉은 산은 조선인과 중국인 사이의 문화적 차이에 의한 갈등이 없다고 혹평했는데 비해 농군은 조선인과 중국인의 문화적 차이가 갈등의 원인으로 설정했다며 호평했다.[[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439380|KCI원문 다운로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